闲山:龙的出现

한산: 용의 출현,闲山岛海战,한산도대첩,Hansan: Rising Dragon

主演:朴海日,卞约汉,安圣基,孙贤周,金成圭,金成畇,金香起,玉泽演,孔明,朴智焕,赵在允,李瑞埈

类型:电影地区:韩国语言:韩语年份:2022

《闲山:龙的出现》剧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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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闲山:龙的出现》长篇影评

 1 ) 电影还没出,但是写在前面。

其实吧,电影工业来说,应该要好好看看这部片的,但多半不能达到当年那种高票房了,原因可能不是没有当年的技术好,而是观众的期待值的问题。

预测后面的评论又是一通宇宙国呀,小渔船,村斗之类的,我觉得大可不必,历史方面先不说,电影工业来说的话韩国已经是亚洲最强各位没意见吧。

韩国现在是吸收了众家所长,自从近几年上一辈艺术类韩国导演作品变少以后,现在韩国影视几乎都是十分商业,但抵不住人家良性循环呀,如果喜欢过去那种艺术片口味的话,每年那么多商业片中还是可以挑出些颇具艺术气息的,为啥汤唯要嫁韩国导演,多半他也看出来了,我国内的影视氛围大概率出不了好作品,说来也悲哀,这并不是有没有钱的事情,我国影视行业从来都不缺钱,但是行业内的猫腻太多,也许电影体系里所有方面都是好的,但就是出不了好作品,就比如好导演.好编剧.好演员.全都集齐了,但演员拿走了60%,编剧1%,剩下的服道化只有5%,这样也绝对出不了好作品,遥望20年前韩国拍了很多那种屎尿屁的喜剧片,当时真的觉得很好笑,相信那些电影成本也不高,但人家就是出效果啊(比如任昌丁.崔成国之类的演员,可以看出人家演员的用力演出),所以,有时候看韩影真不该一味调笑人家,应该好好看看人家的演员.导演.编剧是如何“用心”在做自己的本职工作的。

 2 ) 朝鲜神将拯救大明王朝——《闲山:龙的出现》

今天聊聊韩国电影《闲山:龙的出现》。

片名한산: 용의 출현/ 한산도대첩 / Hansan: Rising Dragon (2022),别名闲山岛海战。

韩国人拍了一部史诗性质的历史战争电影《闲山:龙的出现》,浓墨重彩展现了1592年朝鲜水军在闲山岛近海击败日本水军的“闲山岛海战”。

本片和《鸣梁海战》(명량 ,2014)一样,讲述的依旧是朝鲜水军大将李舜臣的故事。

如果影片只是表现这一场海战的话,那就还算不错。

但有意思的是,影片中不忘提及战争背景、夸大海战影响,其历史虚无主义就让人不得不吐槽几句了。

2013年《鸣梁海战》的大获成功点燃了韩国民众的爱国激情,成为韩国有史以来观影人数最多、票房最高的电影,续集也顺理成章地被提上日程。

制作方决定延续《鸣梁海战》的成功,再拍摄两部有关李舜臣的海战电影,8年后《闲山:龙的出现》成功上映,同样取得了肉眼可见的成功。

影片上映5天后就成为当年票房第三名。

《闲山:龙的出现》的故事发生在1592年,也就是《鸣梁海战》发生的前五年。

影片中日寇入侵朝鲜,把朝鲜军队打得节节败退,眼看着就要打下朝鲜王京汉城了,连朝鲜国王都跑路想向明朝求援。

此时所有的重担都落在朝鲜全罗道左水使李舜臣身上。

他要在海山阻击日寇水军,这样才能阻止日寇的灭国计划,以及随后的占领大明和天竺。

值得肯定的地方是,《闲山:龙的出现》在服道化上下了狠功夫,不管古代人穿的是什么样的,至少影片中呈现的状态能够让人相信这是一场气势恢宏的大决战。

灯光效果、视觉特效,都能看出经费在燃烧。

最后一场大战中,大量船只开始由远及近的史诗级战斗,士兵们也舍生忘死一般地扭打成一团,从娱乐性上来说是合格的。

在剧情设置方面,影片涉及爱情元素,但只是一笔带过,知道取舍,没有浪费任何笔墨,详略得当。

《闲山:龙的出现》的故事背景是发生在1592年至1598年的万历朝鲜战争。

万历朝鲜战争的起因是日本的野心。

1950年,猴子丰臣秀吉继承先主织田信长的遗志,结束了长达一百多年的战国时代,完成日本统一。

紧接着丰臣秀吉为了化解国内大名对土地分封的不满,同时实现个人野心,决定入侵朝鲜,然后再征服中国、进夺天竺,从而称霸亚洲。

战争开打1个月,日军就攻陷了朝鲜王京汉城,朝鲜国王李昖北逃义州,向宗主国明朝求援。

明朝派李如松统领4万大军抗倭援朝,李舜臣在海上也取得多次海战胜利。

直至1595年,万历朝鲜战争第一阶段结束。

1597年,日本以14万大军再次入侵朝鲜,朝鲜二次求援,明朝调7万兵力赴朝救援。

中朝联军在陈璘、邓子龙、李舜臣的指挥下,取得了鸣梁海战的胜利,但李舜臣和邓子龙壮烈牺牲。

这也是电影《鸣梁海战》的内容。

最终万历朝鲜战争以中朝联军的胜利告终。

万历朝鲜战争深刻影响了东亚政治军事格局。

朝鲜从亡国到复国,而日本则元气大伤,丰臣秀吉集团势力被大幅削弱,德川幕府崛起,这些都是后话。

《闲山:龙的出现》描写的只是万历朝鲜战争第一阶段的其中一次战斗。

战斗的过程基本也和电影中所描写的一样,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7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此处具有较为宽阔的深水环境,可以方便大军设置埋伏合围歼灭日军。

大决战中,朝鲜水军将日军包围,随后朝鲜水军直接冲撞日本水军,很快撞翻了日军前方的几艘大船,而其余朝鲜战船也奋勇杀敌,击沉日军40艘船,创下“闲山岛大捷”。

影片至此就结束了,但如果就此打住那也还好,可偏偏电影还要无限拔高这场海战的意义。

按照影片的说法,朝鲜水军的闲山岛大捷不仅打败了日寇,还拯救了大明王朝,绝口不提自己一个月被人攻占王京,跑到大明求援;也不说明朝军队援朝后,朝鲜人争夺指挥权;更不说此战之后,李舜臣的战术被日军掌握克制方法,日军以固守据点的方式对付朝鲜水军,李舜臣再无法取胜,釜山浦、长门浦、熊川、唐项浦、永登浦等后续海战全部失败……

《闲山:龙的出现》的副标题是龙的出现,但全片你都看不到龙在哪里,只有几只老乌龟一样的龟船在横冲直撞。

李舜臣克敌制胜的奇招就是全身披甲的龟船。

龟船吃水大、护甲高,依靠冲撞可以把敌船撞个大洞。

大家可以把龟船想成DOTA里的钢背兽,防御值极高。

《闲山:龙的出现》唯一说对的就是战争性质。

这是一场义战与不义之战。

猴子为了转移国内矛盾,悍然发动侵略战争,直接把东亚国家拉进泥潭。

三四百年后,日本人故伎重施,再次把东亚搅得鸡犬不宁。

我稍微看了一下西方国家网友的评论,他们说这部作品比起吴宇森的《赤壁》,更像是《300勇士:帝国崛起》,表示影片依靠CGI辅助提供了非常棒的体验,尤其是迷雾散去战舰现身的一刻,颇能打动人。

别看《闲山:龙的出现》讲述的只是漫长战争中的一个小到不能再小的战斗,导演却将故事表现得宛若一场世纪大战。

影片内容宏大且密集,从朝鲜、日本两个方面分别叙事,场景包含水路两条线,时间线跨越战争前后数日,给人的感觉就是这场战斗将决定万历朝鲜战争的最终走向。

但闲山岛大捷可不是赤壁之战那样的决定性战斗,可影片呈现出的效果就是很能唬人。

韩国总觉得自己是朝鲜半岛的正统继承人。

《鸣梁海战》《闲山:龙的出现》等一系列提振韩国人民族自豪感的电影颇为吃香。

但我们也不知道一个没有主权的国家怎么会产生这种错觉的?

韩日近几十年成为殖民地后,才变得安分守己,可不是这俩货本身是什么好鸟。

这可能和缺啥就要显摆啥一样,韩国男人对某种手势特别敏感,韩国的爱国热情也只能在历史虚无主义中自我高潮。

我们如果不拍摄属于自己的历史题材电影,恐怕以后连历史都要被偷国改写。

大逃跑可以拍成《敦刻尔克》,长津湖可以拍成《忠诚》,我们正面描写历史反而会被人指责战狼。

朝鲜神将拯救大明王朝,虚无主义殖人自我感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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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闲山岛大捷 闲山岛海战 闲山岛战役的历史

闲山岛大捷又称闲山岛海战,是1592年8月14日朝鲜与日军在闲山岛附近的一场重要海战。

朝鲜将领李舜臣的水军在此次海战中击沉63艘日船。

为了与朝鲜水师进行决战,日本水师在巨济岛一带集结,准备兵分三路向朝鲜水师发动进攻。

而李舜臣则将其全罗道的舰队和庆尚道的部分舰队组成联合舰队,准备迎战。

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8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李舜臣选择在此地决战是因为这里有著较为宽阔的深水环境,易于设置埋伏,可以向日本舰队进行包围歼灭。

1592年8月13日有平民回报说看到倭舰在巨济岛附近集结。

得到消息后的第二日清晨,李舜臣派出6艘板屋船去引诱日舰。

胁坂安治的海军见到板屋船后,马上追踪上来,一直追到闲山岛附近的广阔海域,与李舜臣的海军相遇。

在李舜臣与日军的前两次交锋中,李舜臣采用的是线型或圆型的连续式的进攻阵型。

虽然这种战术对于击溃敌方舰队很有效,但是也会让很大一部份的敌舰得以逃脱,这样无法有效消灭敌方军力。

为了克服这个缺点,李舜臣在此次海战中摆出了新型的鹤翼阵或称U型阵,意在不但要击溃日本舰队还要将之包围进而歼灭。

日军的战术是先派出快速的军舰突击然后迅速派出主力战舰靠近并登船。

日军的这种战术正中李舜臣的圈套。

朝鲜海军以鹤翼阵将接近的日舰包围住,舰上炮火从各个角度将被围的日舰摧毁。

战斗从早上一直打到傍晚。

在丧失了59艘战舰后,胁坂安治开始撤退,朝鲜水军获得大捷。

李舜臣事后在“见乃梁破倭状”中宣称击毁的日本舰队为大船36只、中船24只、小船13只、击破数63只,但是根据胁坂安治领地的石高算出的动员定数大约为1500人,这个战果数应当是过高了(次年5月日军攻击晋州城时胁坂军统计为900人,而且之前有相当一部分日军士兵回国休整,因此此战日军伤亡应较低)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

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

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6月21日 第四纪事비변사가 아뢰기를,"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 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수종(首從)이 있고 공에는 대소가 있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 차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적을 벤 것으로써 대략을 논하면, 힘을 다하여 혈전했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시 1등에 참여된 이는 마땅히 별도로 포상을 하여야 할 듯합니다. 첨사(僉使) 김승룡(金勝龍),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은 특별히 당상(堂上)에 올리고, 현감(縣監) 김준계(金遵階)는 3품으로 승서(陞敍)하고, 주부(主簿) 원전(元㙉)은 5품으로 승서하고, 우치적(禹致績) 등 4인은 6품으로 승서하고,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은 공에 맞는 관직을 제수하소서. 만호(萬戶) 한백록(韓百祿)은 전후 공이 가장 많은데 탄환을 맞은 뒤에도 나아가 싸우다가 싸움이 끝나고 오래지 아니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극히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니, 또한 당상(堂上)으로 추증하소서. 배지인(陪持人) 박치공(朴致恭)은 3급(級)을 베고 왜적 한 명을 사로잡았으니 6품으로 승서함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답하기를,"이에 의하여 조처해야 한다. 원균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지 않는가?"하였는데, 회계(回啓)하기를,"원균은 이미 높은 가자를 받았고 지금 이 전첩(戰捷)의 공은 이순신이 으뜸이므로 원균에게는 가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8월 24일 2번째 기사備邊司啓曰: "慶尙道 元均獻捷啓本, 卽頃日李舜臣 閑山等島一時事也。

臨戰首從, 功之大小, 必有差等於其間。

而在此的知爲難。

以斬敵論大槪, 戮力血戰則無疑。

再參一等, 似當別爲褒賞。

僉使金勝龍、縣令奇孝謹特陞堂上, 縣監金遵階三品陞敍, 主簿元㙉五品陞敍, 禹致績等四人六品陞敍, 李孝可等十三人相當職除授。

萬戶韓百祿前後之功最多, 而至於中九之後進戰, 戰罷不久, 竟至於死。

極爲慘惻, 亦堂上追賜。

陪持人朴致恭斬三級、生擒一倭, 六品陞敍何如?" 答曰: "當依此爲之矣。

元均則不爲加資乎?" 回啓曰: "元均已受重加, 且今玆戰捷之功, 李舜臣爲主, 元均似不必加資矣。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8月21日 第二纪事其他影评的都讲错了,或者是精神有问题的碍国喷、🐶篮子之胡说十道。

我这才对当时历史的真实记录。

 4 ) 把《闲山:龙的出现》《鸣梁海战》《南汉山城》《夜枭》《思悼》历史背景串起来。

影片《闲山:龙的出现》故事背景是丰臣秀吉第一次派兵侵略朝鲜,主要表现朝鲜水军将领李舜臣领导的海战。

历史上明朝出兵帮了朝鲜,当时是明朝万历年间,朝鲜国王李昖(朝鲜王朝第14代君主)向明朝求援,明朝当时皇帝明神宗朱翊钧派李如松统领4万兵力抗倭援朝,中朝联手取得胜利,本片中并没有着重表现明军。

影片《鸣梁海战》,故事背景是历史上的露梁海战,日军再次侵略朝鲜,当时朝鲜君主还是李昖。

朝鲜二次求援明朝,明朝调遣7万兵力救援。

朝鲜将领李舜臣牺牲了,明朝将领邓子龙也牺牲了。

如果没有明军援朝,朝鲜基本上就被日本控制了,日本得胜后很可能进攻中国。

战争末尾,丰臣秀吉逝世后,之后德川幕府崛起。

从长远来看,万历朝鲜战争在当时起到了重新整合东亚各国政治军事力量的作用,并影响了几百年。

影片《鸣梁海战》拍的比电影《闲山》早,但在事件时间上两者反过来,《闲山》朴海日演的李舜臣都看得出来比《鸣》崔岷植演的李舜臣更年轻。

影片《南汉山城》里投降大清的仁祖李倧,是《闲山:龙的出现》中李昖的孙子,朝鲜王朝第16代君主,由朴海日饰演。

《南汉山城》的故事背景是1636年,明崇祯九年、朝鲜仁祖十四年,皇太极称帝建立大清国后不久率领十万清军攻打朝鲜,朝鲜打不过大清的铁骑和红夷大炮,被迫投降皇太极,行三跪九叩之礼,把世子当人质。

上面说了万历朝鲜战争中,明朝帮了朝鲜那么多,如果朝鲜投降大清,违背与明朝的同袍之义,况且朝鲜一直是明朝的藩属国,朝鲜人一直认为后金是地方蛮夷之流,称不上正统,所以《南汉山城》呈现出朝鲜人认为投降大清是耻辱。

《夜枭》中的君主仍然是《南汉山城》中的那个投降大清的第16代仁祖李倧,由刘海镇饰。

前面《南汉山城》说世子去大清做人质,《夜枭》里去大清当人质的儿子成年归来,仁祖李倧怀疑世子要夺权,让御医做手脚把世子害死。

《思悼》里饿死世子的英祖李昑,是后面的朝鲜国王,朝鲜王朝第21任君主,由宋康昊饰演。

朝鲜王朝历时518年,共27位君主,在位时间最长的君主就是这位李昑,在位52年(公元1724年到公元1776年),同年代是清朝雍正和乾隆在位时期。

《观相》里首阳大君李瑈,是比较早的,朝鲜王朝第7任君主,由李政宰饰演。

说回《闲山:龙的出现》这个电影,先吐槽一下,接近抗日神剧了,靠人力划桨的船,转舵也太快了吧,而且将军令一出,连旗都不打,几十艘船立马就有反应,这是用无线电还是建了微信群?

决战时候倭寇船一共也没开几炮。

几个小将军大部分时间就是目光坚毅站在船上摆造型。

结果是自己船一艘没沉,对方全军覆没,往自己脸上贴金有点过了。

年代感环境氛围和人物造型还行。

海战场面做得还行,有几个关键节点的关键镜头没有呈现出来。

前面多次看困,主要是能猜到韩国会拍什么内容。

 5 ) 闲山岛大捷 闲山岛海战 闲山岛战役的历史

闲山岛大捷又称闲山岛海战,是1592年8月14日朝鲜与日军在闲山岛附近的一场重要海战。

朝鲜将领李舜臣的水军在此次海战中击沉63艘日船。

为了与朝鲜水师进行决战,日本水师在巨济岛一带集结,准备兵分三路向朝鲜水师发动进攻。

而李舜臣则将其全罗道的舰队和庆尚道的部分舰队组成联合舰队,准备迎战。

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8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李舜臣选择在此地决战是因为这里有著较为宽阔的深水环境,易于设置埋伏,可以向日本舰队进行包围歼灭。

1592年8月13日有平民回报说看到倭舰在巨济岛附近集结。

得到消息后的第二日清晨,李舜臣派出6艘板屋船去引诱日舰。

胁坂安治的海军见到板屋船后,马上追踪上来,一直追到闲山岛附近的广阔海域,与李舜臣的海军相遇。

在李舜臣与日军的前两次交锋中,李舜臣采用的是线型或圆型的连续式的进攻阵型。

虽然这种战术对于击溃敌方舰队很有效,但是也会让很大一部份的敌舰得以逃脱,这样无法有效消灭敌方军力。

为了克服这个缺点,李舜臣在此次海战中摆出了新型的鹤翼阵或称U型阵,意在不但要击溃日本舰队还要将之包围进而歼灭。

日军的战术是先派出快速的军舰突击然后迅速派出主力战舰靠近并登船。

日军的这种战术正中李舜臣的圈套。

朝鲜海军以鹤翼阵将接近的日舰包围住,舰上炮火从各个角度将被围的日舰摧毁。

战斗从早上一直打到傍晚。

在丧失了59艘战舰后,胁坂安治开始撤退,朝鲜水军获得大捷。

李舜臣事后在“见乃梁破倭状”中宣称击毁的日本舰队为大船36只、中船24只、小船13只、击破数63只,但是根据胁坂安治领地的石高算出的动员定数大约为1500人,这个战果数应当是过高了(次年5月日军攻击晋州城时胁坂军统计为900人,而且之前有相当一部分日军士兵回国休整,因此此战日军伤亡应较低)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

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

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6月21日 第四纪事비변사가 아뢰기를,"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 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수종(首從)이 있고 공에는 대소가 있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 차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적을 벤 것으로써 대략을 논하면, 힘을 다하여 혈전했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시 1등에 참여된 이는 마땅히 별도로 포상을 하여야 할 듯합니다. 첨사(僉使) 김승룡(金勝龍),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은 특별히 당상(堂上)에 올리고, 현감(縣監) 김준계(金遵階)는 3품으로 승서(陞敍)하고, 주부(主簿) 원전(元㙉)은 5품으로 승서하고, 우치적(禹致績) 등 4인은 6품으로 승서하고,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은 공에 맞는 관직을 제수하소서. 만호(萬戶) 한백록(韓百祿)은 전후 공이 가장 많은데 탄환을 맞은 뒤에도 나아가 싸우다가 싸움이 끝나고 오래지 아니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극히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니, 또한 당상(堂上)으로 추증하소서. 배지인(陪持人) 박치공(朴致恭)은 3급(級)을 베고 왜적 한 명을 사로잡았으니 6품으로 승서함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답하기를,"이에 의하여 조처해야 한다. 원균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지 않는가?"하였는데, 회계(回啓)하기를,"원균은 이미 높은 가자를 받았고 지금 이 전첩(戰捷)의 공은 이순신이 으뜸이므로 원균에게는 가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8월 24일 2번째 기사備邊司啓曰: "慶尙道 元均獻捷啓本, 卽頃日李舜臣 閑山等島一時事也。

臨戰首從, 功之大小, 必有差等於其間。

而在此的知爲難。

以斬敵論大槪, 戮力血戰則無疑。

再參一等, 似當別爲褒賞。

僉使金勝龍、縣令奇孝謹特陞堂上, 縣監金遵階三品陞敍, 主簿元㙉五品陞敍, 禹致績等四人六品陞敍, 李孝可等十三人相當職除授。

萬戶韓百祿前後之功最多, 而至於中九之後進戰, 戰罷不久, 竟至於死。

極爲慘惻, 亦堂上追賜。

陪持人朴致恭斬三級、生擒一倭, 六品陞敍何如?" 答曰: "當依此爲之矣。

元均則不爲加資乎?" 回啓曰: "元均已受重加, 且今玆戰捷之功, 李舜臣爲主, 元均似不必加資矣。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8月21日 第二纪事我这才是当时历史的真实记录。

 6 ) 这才是李舜臣的成名之战

以史为鉴,可以知兴替R君说“身世酒杯中。

万事皆空。

古来三五个英雄。

雨打风吹何处是,汉殿秦宫。

梦入少年丛。

歌舞匆匆。

老僧夜半误鸣钟。

惊起西窗眠不得,卷地西风。

”(辛弃疾《浪淘沙.身世酒杯中》)

韩国影史上第一次突破1000万观影人次,1000亿韩元票房(最终为1760万观影人次,及1367亿韩元票房,约合7.65亿人民币)的韩国电影作品,是2014年的《鸣梁海战》。

这部讲述韩朝历史上的民族英雄,大将李舜臣在1597年秋天在鸣梁海峡,利用了对地形及潮汐的熟悉,以区区12艘战舰却击退200多艘日军战舰,还击毙日军水师总指挥来岛通总(也是在整个明朝万历朝鲜战争中唯一战死的日本大名)的战争史诗,在韩国电影中的位置,基本相当于今天《长津湖》在中国市场上的地位和成就。

所以,显而易见,这样的作品一定会有续集问世.......

终于,大约也是因为疫情耽搁,整整8年之后,原导演金汉珉终于带着《鸣梁海战》的前传《闲山:龙的出现》再度成为韩国院线的顶流.......电影本身拍的肯定不差,无论从战争场面、节奏把握以及一些细节雕琢,依然是上乘作品。

尤其是本作对于反面角色,日军的海军总指挥肋坂安治的人物着墨,比前作一味充满莽武的来岛通总,要丰富和深入的多。

但是,也许因为受限于剧本和故事本身的背景,对比前作,对于主角李舜臣的刻画和描绘,就弱了许多.......实际上,闲山岛海战基本上才是李舜臣的成名之战。

虽然在此之前,李舜臣作为全罗左道水军节度使(相当于中国海军军区司令岗位),1591年开始已经开发研制了著名的龟船(1592年4月日本开始入侵朝鲜),并且和同仁全罗右道水使李亿祺、庆尚右水使云均等已经在玉浦海战、合浦海战、赤珍浦海战和泗川海战、唐浦海战和唐项浦海战中其实都已经多次击败过日本水军,但相对而言,这些海战基本上朝鲜水军与日本水军的军舰数量都相差不多,大多属于遭遇战,甚至朝鲜水军对日本水军的偷袭战,因而在历史上地位不强。

但闲山之战,则是历史上相对重要的战役。

由于日本攻击朝鲜半岛,必须通过水上交通,运输军力和物资,所以保障海上通道的安全对整个“文禄庆长之役”(日本历史上对这场朝鲜战争的称法)属于相当核心的需要。

日本水军在前面几次海战失利后意识到李舜臣所带领的朝鲜水军对整个战局的威胁,因而在闲山之战中,其实是第一次大规模侵巢出动,寻求与朝鲜水军的决战(日军一向有这样的风格,喜欢玩各类“太阁立志”和“信长野望”的用户都应该非常熟悉)。

同时,除了水军的兵分三路的全面压上,日军还调集陆军从陆地攻击朝鲜水师基地,试图一次性彻底解决朝鲜水师的威胁。

而时年约47岁的李舜臣,在兵力略处下风的情况下,巧妙利用战术谋略和对地形水流的熟悉,成功以“鹤翼阵”大破日本水军。

(这阵法展示算是本作中一大亮点,在各种影视作品中,能比较清晰展示古代战阵安排和作用的大概也只有吴宇森的《赤壁》和本作了)闲山之战,各类历史记录中消灭日军舰只的数量都略有差异,但基本上在50-60艘左右的数量。

但因为是海军主力决战失利,所以对整个朝鲜战局都有一定影响,不仅不能实现日军“海陆并进”的协同战略,通过海军给陆军提供攻击支持,还让整个日本到朝鲜的海上补给线都面临着威胁。

因而,闲山岛海战算是让日军真正领略到李舜臣的威胁,日军侵朝军总指挥小西行长甚至认为李舜臣是日军侵朝战争取胜的重大障碍,需要尽快除去。

(这也是为啥在《鸣梁海战》中,日军水军几位著名的将领肋坂安治、藤堂高虎、加藤嘉明,这些几乎和闲山同一批面对过李舜臣的,都显得心有余悸。

而唯有当时刚从日本过来,没有吃过苦头的来岛通总趾高气昂......结果就是,自觉牛逼、不知死活的人果然战死了......)在闲山岛海战之后,朝日2军又在安骨浦海战中再次交手,日军再次失利。

之后日本水军就基本采用了守势,直到明朝军队取得平壤大捷后,形成整个万历朝鲜战争第一阶段结束,双方休兵议和状态。

但遗憾的是,在本作中,作为绝对主角的李舜臣,在演绎中显得过于沉稳而寡言,但威势不够。

对比《鸣梁海战》中甚至亲身带军冲锋激发下属军队的形象,虚弱了很多。

(而实际上,前作扮演李舜臣的,可是韩国老戏骨崔珉植,这稳稳的压阵感确实比本作的主演朴海日要强的太多......)因而,从整体而言,《闲山:龙的出现》的确没有超越《鸣梁海战》的高度,但放在世界海战影片中,也依然可以算是顶级作品之一了。

历史上的闲山海战

谈战争,当然离不开《孙子兵法》。

《孙子兵法》开篇《始计篇》就写道:“孙子曰:兵者,国之大事,死生之地,存亡之道,不可不察也。

故经之以五事,校之以计,而索其情:一曰道,二曰天,三曰地,四曰将、五曰法。

道者,令民与上同意也,故可以与之死,可以与之生,而不畏危。

天者,阴阳,寒暑、时制也。

地者,远近、险易、广狭、死生也。

将者,智、信、仁、勇、严也。

法者,曲制、官道、主用也。

凡此五者,将莫不闻,知之者胜,不知者不胜。

故校之以计,而索其情,曰:主孰有道?

将孰有能?

天地孰得?

法令孰行?

兵众孰强?

士卒孰练?

赏罚孰明?

吾以此知胜负矣。

”这段话的解释核心自然就是“天时地利人和”,但如果更仔细的说,就是将领必须做到知己知彼,除了了解对手的情况和自己军队下属将领及军士的能力外,并且非常了解各项对战争影响的环境要素,比如气候、地形、环境特点,同时必须要做到练兵到位,赏罚分明,军令如山。

除了龟船这一黑科技武器,朝鲜军队无论在质量数量上当然是不如日军了。

(甚至在日常武器上,日军大量配备了铁炮(原始步枪),并且经历过大量战国时代诸侯交战的历练,也都大大优于朝鲜军队的武器配置)对比陆军的节节败退,李舜臣的水军在整个万历朝鲜战场上表现都属于相当出色的,几乎属于另类般的存在。

除了他本身对于战意的坚定和天生的不屈精神,无论在《鸣梁海战》还是《闲山》中,他对于每场战争本身的准备都是相当充分的。

在历史中,闲山之战是一场充分展现《孙子兵法》对阵的战斗:李舜臣从开始就选好了闲山岛附近宽阔又水深的海域作为整个战场,而避免了和日军在狭窄的水道里进行缠斗。

(缠斗基本上是战舰挤在一块,船上的军队跳到对方舰只上进行肉搏。

实际上,一旦缠斗,以日军的凶悍、装备和基本素质,朝军很难抵御。

而李舜臣和明朝将领邓子龙在最后露梁海战时双双殉国的战役中,就是在狭窄的海道中截击退却的日本海军,最终被日本军队在登舰混战中射中。

)是为地利。

而利用日军军内意见不合的优势(当时日军2位主将肋坂安治和加藤嘉明意见不合。

在电影中也有所表现,但现实应该没有电影中这么夸张甚至严重内讧),急于求战立功而又轻敌的心理,先用小股部队引诱敌人。

结果加藤嘉明果然没有经得住诱惑,而先破阵出发,引发整个日军舰队尾随而进,掉入朝鲜水军的包围圈。

是为人和。

同时,在前期,电影展现了李舜臣多次领军在作战海域里进行阵法演练,让整只舰队可以协调一致,能充分实施预先规划好的打击。

是为勤练与法令。

最后,日本海军是几乎完全掉入李舜臣设计的“口袋阵”,被朝鲜水军团团围住,不仅拥挤混乱不堪,还无法躲避朝鲜水军充分有效的炮击,几乎是一边倒的被朝鲜水军打击。

实际闲山海战是整整打了一整天,而不是电影中可能最终就一阵火炮集中轰击定大局。

最后几位日军主将是带着几只主舰拼命逃出重围才得以幸免。

今天,记录在朝鲜《李朝实录》和日本《日本外史》中《德川氏前记.丰臣氏中》,这场战役不过是寥寥数笔的文字。

但如果回放当年的战场实景,应该是电影中展现的那样波澜壮阔、杀声震天.......即便出于种种原因,我们可能无法对韩国英雄和战争的结果产生共鸣,但不可否认的是,我们都需要尊重李舜臣在这场战争中的地位和成就。

兵者,死地也。

战争从来都不是一个容易的事情。

任何轻视战争严肃性和残酷性的心态,最终可能都只能以自己的惨痛损失作为代价。

以史为鉴,可以知兴替

世界影坛有2个有趣现象:1是好莱坞很少拍朝鲜战争题材的影片,2是日本影视界也很少拍“文禄庆长之役”题材的影片;偏偏这2场战争,都有我们华夏军队参与,这大概多少说明一些问题。

实际上,这2场战争,从军事实力上,对手都是非常强大的,并且都抱着更深的企图。

虽然万历朝鲜战争属于“明朝万历三大征”中的一个,也因此严重消耗了明朝的国立。

(《明史》记载:“其冬,朝鲜用兵,首尾八年,费帑金七百余万。

” 甚至是“三大征”中最费钱的一场。

) 但总体而言,“三大征”都巩固了当时明朝的疆域安全,及在整个东亚地区的强大地位。

这2场发生在朝鲜半岛上的战争,如果都任其发展而坐视不管,恐怕神州大地就不是1931年才会面临入侵了。

所以,该出手时要出手,才是江湖地位稳固需要的态度。

相对而言,回看强大实力的对手失利,也可以发现,“人和”始终都是影响战争的决定性要素之一。

在整个万历朝鲜战争中,日军起初的势如破竹,主要是因为朝鲜对于战争毫无准备,并且军队实力和素质差的太多。

当强大的明军出阵之后,日军就屡屡受挫。

其中,除了对手实力强大外,整个日军将领界之间的不和也都是见诸史册的(尤其是小西行长和加藤清正之间)。

这些不和甚至一直延续到朝鲜战争结束后,德川与丰臣家族的最终夺权内战中。

而在朝鲜这里,其实针对李舜臣也发生过权争的问题。

由于日军知道李舜臣的厉害,自1593年开始就很少主动应对李舜臣带领的朝鲜水军。

而1594-1595年,明朝和日本就朝鲜战争在议和过程中,因此双方也就比较少进行进一步战役。

但日本在此期间,就多次在朝鲜王廷中散播李舜臣私通日本,故意不出战的谣言。

实际上,李舜臣在此期间,除了积极练兵外,也密切保持对日军的观察。

但1957年,因为日军加藤清正在长门浦登陆,朝鲜王宣祖认为是李舜臣没有按自己要求做好预先拦截,为之震怒,认为李舜臣多次不听指挥,惯于欺君,轻慢朝廷。

“武臣轻慢朝廷之习,不可不治。

” 竟以“欺罔朝廷、纵贼不讨”的罪名在1957年2月将李舜臣逮捕下狱,并严刑拷打......如果不是当时知中枢府事郑琢上了一道表文为李舜臣求情,他真的可能就死在牢里了......最终算是宣祖开恩,李舜臣免为一死,但还是把他贬为小兵身份。

而他的老母也因为儿子入狱,忧虑成疾,不久逝世.......

而在他入狱期间,日军再次大举入侵朝鲜。

而7月没有了李舜臣的朝鲜水军和日本水军在漆梁川大战,结果100多艘朝鲜战舰几乎全军覆没,包括其中大量的龟船......到了这时候,宣祖才重新想起李舜臣的好来,重新起用他为统制使,再度带领朝鲜水军。

而这时朝鲜水军只剩下12艘战舰,这也才有了《鸣梁海战》中,12艘战舰(其中还没有一艘龟船)大战100多艘日本战舰,还击毙日军重要将领的故事......

如果阅读这一部分历史,R君感觉与明末崇祯皇帝时期发生的事情如此相似.......只不过,当时朝鲜王朝运气比较好,还有大明王朝作为后盾,否则以宣祖这样昏庸的举动,单独面对日本,朝鲜半岛早就灭国了.......而崇祯就没有那么运气了,他不但要面对强大的满清,还要面对背后李自成的起义军,最终自挂景山时,不但不悔过自己如何自毁长城,灭了卢象升、袁崇焕这些栋梁之才,却还怨“诸臣误朕”.......一场《闲山:龙的出现》,虽然作为战争电影,娱乐为主,但背后,又有多少值得思考的历史.......最后,期待下三部曲中的最后一部《露梁海战》,届时,就不光是朝鲜水军和日本水军了,而是大明水军、朝鲜水军和日本水军的决战了!

R君,2022年9月17日,于上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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谢谢啰!

财猫电影兵无常势,水无定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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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棒子国战争海战主旋律片。为了不被亡国,李舜臣带领棒子国海军,与联合了陆军一起进攻的胁坂安治率领的岛国舰队在闲山附近进行海战,最后击败倭贼的故事。

棒子国战争海战主旋律片。

为了不被亡国,李舜臣带领棒子国海军,与联合了陆军一起进攻的胁坂安治率领的岛国舰队在闲山附近进行海战,最后击败倭贼的故事。

故事一开始,棒子国老师用具有铁龙头的龟甲船大破倭贼。

但是倭贼发现龟甲船有它的弱点,比如铁龙头容易被卡住,不能快速离开,另外就是船的两翼比较薄弱,容易击破。

倭贼派出探子对龟甲船进行侦查,拿到了龟甲船的图纸,并了解到了鹤形阵的排布。

其实李舜臣早就安排工匠对龟甲船进行了改进。

胁坂安治了解了龟甲船的构造后,就开始收缴一些和自己一样水军的船只,并联合陆军准备来一个水路夹攻,击破李舜臣的水军大营。

李舜臣得到情报后,就联合陆地的义军,一起对抗倭贼。

李舜臣在海战中,先是派出熟悉峡谷的三艘船引倭贼来战,但是胁坂安治没有动,他的边翼部队不知是计,追赶过来,结果在海峡内被歼灭。

胁坂安治一直等到感觉陆地部队已经攻陷了棒子国要塞才开始出战,因为船速快,他们很快赶上了作为诱饵的船只,让李舜臣的鹤形阵成不了型。

幸亏改进过的龟甲船及时杀到,冲散了倭贼的阵型。

最后在倭贼的船只靠得足够近的时候,李舜臣把船队横了起来,形成屏障把倭贼一举歼灭。

陆地上,义军也成功阻截了倭贼的进攻,棒子国一举挫败了倭贼的全面进攻,并取得了战争的主动。

最后的海战很是精彩,让人观之血脉喷张,特别是看到倭贼的嚣张气焰,把他们一举打败,真心很解气。

当然最后棒子国的英雄举起了象征义气的旗帜才知道是棒子国的主旋律影片,有点用情过度了。

不过打得倭贼嗷嗷乱叫,还是蛮解气的。

龟甲船的改良还是不错,动了脑筋,也起到了决定性作用。

不过那个降了李舜臣的倭贼有点莫名其妙,就因为看出李舜臣爱兵如子,不像胁坂安治为了胜利不顾人死活,有点太过了吧,感觉比较儿戏,就为这个事,杀自己人,成了义军?

朴海日还是蛮稳的,就是脸有点僵硬,可能是为了反映李舜臣的,沉稳,运筹帷幄吧!

 8 ) 英雄史诗,不是这样拍的。

浸润多年,我对朝鲜王朝的历史也充满着感情和敬意。

尤其是壬辰战争,明朝和朝鲜联军浴血奋战,击溃了强大的倭军。

李舜臣则是朝鲜民族伟大的英雄,因此,多年以来,壬辰战争电影中,“不灭的李舜臣”抗击倭军是这类题材的重要核心主题。

从前看过《鸣梁海战》,这一部《闲山岛海战》,大体的思路也是如此,展示李舜臣所面对的艰难困局,他坚韧不拔,智慧和勇气都超乎常人,可以凭借一己之力,力挽狂澜。

电影技术的进步,倒置剧情的浮夸。

跟《鸣梁海战》一样,朝鲜海军对付倭军,龟船的战斗力被无限拔高,消灭敌人,简直就是摧枯拉朽。

如果真有这样的战斗力,那可以说是天下无敌了。

怎么还需要战斗八年呢?

我深切了解,李舜臣将军是韩国史上伟大英雄,但是这种脱离历史事实,剧情浮夸,不仅损害了电影的艺术性和感染力,也损害了说服力。

每次看完这类电影,我们总会问,这是真的吗?

难以置信。

塑造人物,还是要从人物本身着手,这部电影里对李舜臣的塑造是扁平的,重点全放在神乎其神的龟船海战上,而我们看不到一个能感染观众,触动心灵的伟大英雄。

 9 ) 闲山:龙的出现|李老爷的精彩“船戏”

半岛国的“船戏”,是倒序看的,各有各的精彩。

在半岛国的“船戏”里头,李老爷绝对是绕不过的巅峰。

《露梁海战》和《鸣梁海战》都建议一并打包看完,年轻时的李老爷还需要借助龟背船,到了年纪大了,完全是无招胜有招了。

而每次李老爷面对的对手也相当在线,完全不是啥无厘头的“潘长江版”。

在李老爷的故事里头,有一个人始终绕不过去,就是个“某奸”。

这个人物的设定,很有意思,一开始的时候,一不小心,就把本国的狼子野心暴露得一览无遗。

这个梦想,岛国是做了太久了。

一开始还不太明白为什么要设定这么一个人物,后来发现,大概是“以德服人”的绝佳个例。

这个人,一直跟在李老爷身边,直至战死,也耻于自己曾经的国籍。

传说中的龟背船,设计灵感来自于此。

在文明系列中,如果让半岛发展出这玩意儿,基本海战可以横着走。

当时的局势,其实岛国基本觉得可以“瓮中捉鳖”了。

所以,在还没拿捏时,已经有了自己的小心思。

不仅内部派系斗得厉害,甚至还有了更大的“梦想”。

在这里,大明,得好好感谢一下半岛啊,“如果”不是半岛的李老爷,大明也被岛国这么一划拉的节奏。

这牛皮吹得有点大。

但,咱海战一直不行,也是个无法回避的事实,那个郑和,尽做散财童子了。

其实,此次岛国的战略,还是相当精准的。

水陆两路联合夹击,一举击溃李老爷,从此海陆两路可以横着走。

但是,他们万万没想到,李老爷竟然如此强悍,强悍到大BOSS直接跳脚。

这场精彩绝伦的海战,李老爷依仗的是鹤翼。

这个阵法,岛国不是不知道,甚至还知道破解的招数。

反观李老爷阵营,好多意志不坚定的官僚拖后腿。

按照这个节奏,李老爷的阵法还没展开,就得完犊子。

幸好,三艘龟背神兵天降。

这一番左冲右突,杀得岛国是人仰马翻啊。

而且,这次,龟背吸取了上次的教训,这个头啊,真的是借鉴了“鳖”,会缩的。

李老爷布阵完毕。

一次齐射,岛国的舰队团灭。

这场面,实在是太壮观了,也实在大快人心。

在这点上,咱绝对是和半岛站在一起的。

最后,半岛卖了大明这么大的一个人情,大明总得有点表示啊。

后来的海战里头,大明也派出了一个舰队。

李老爷发现,这派,还不如不派呢,直接来裹乱的不是。

 10 ) 大场面挺有看头,期待史学大牛点评科普

听说花了不少预算,看来相当一部分花在了游戏美工上吗?

类似无人机航拍海上百艘旗舰大战的时候,还蛮壮观的,挺有感觉。

大致做到有点有面。

不过应该历史的考证不多,所以细节就无法太细。

不知道编剧尽力了没有,给男主将们的发挥空间挺小的感觉,常常就是凝重脸,沉静脸,坚毅脸,紧张脸,看起来没啥变化。

当然作为一个剧,还是有不少小段很像舞台剧。

比如那个女侍,咬掉牙毒以后流血昏迷几天,又可以送信又可以那啥了。

期待有史学大牛,借此来科普一番。

百艘战船,在500多年前,总司令怎么给各船长下命令,船长又怎么给每艘船的不同分工下不同的命令,这一个发,那边一个收,都挺有讲究吧。

《闲山:龙的出现》短评

《犯罪都市2》里的孙锡久,《闲山》里的卞约汉,今夏韩国大银幕凭实力抢戏的两个人。

5分钟前
  • 柯里昂
  • 还行

制作精良,最后的高潮有大片的感觉

8分钟前
  • Doo地
  • 还行

历史战争片最重要的张力只能给到70分,营造因素除了鼓点节奏和给人物拉近景就没了,作用是有但多了比较乏味。前半部分谍战中规中矩,对双方卧底的共情和投入度依靠一些有诗意的镜头调度和凌厉的剪辑增添不少,但提示有点过于明显也有些bug。海战部分依然着重于沉稳与进取的矛盾,没什么计谋的展现,这就给卞约汉的角色很大的发挥空间,在战略家和战士方面塑造的厚度比李舜臣多很多,演技也撑得住。另外不理解看惯这边主旋律的有什么好踩这部的,但凡把反派塑造得像个正常人也不会整天弄出些幼儿向的东西

11分钟前
  • Pinklock
  • 推荐

真的很好一部战争片,被低估了

12分钟前
  • 그 봄은
  • 力荐

最后的海战还算精彩,比第一部好看,七分

15分钟前
  • leotsui
  • 还行

通过此片感受到了韩国对自己的定位:朝鲜是据守亚洲文明门户的民族,因为上到李舜臣下到工匠卧底等朝鲜精英们可歌可泣的抵御了日本的上岸,避免了明朝甚至印度等等其他文明遭到野蛮兽族倭国人的屠戮。。。

20分钟前
  • 四月无
  • 还行

《鸣梁海战》的延展版,带移动轨道可伸缩的龙头海龟船冲击,闲山岛海战打败倭寇!朴海日中年版的李舜臣顿了些儒雅和书生气,与崔岷植相比差了一档位!电影并非历史正剧,虽有夸张处理但结尾出近三十分钟的海战场面,还是蛮震撼的!蓝光版本中收录花絮中,有道具和服饰制作的内容!

22分钟前
  • 球友基哥
  • 还行

仅从本片看,当年朝军的海上无线电通讯技术已经技冠全球。

27分钟前
  • 老羊
  • 较差

就渲染日本投降俘虏的这个大局观,减一星!😄

28分钟前
  • Francis翔
  • 较差

李舜臣在韩国能有那么高地位是有两把刷子 但是似乎也太神话了 抗日神剧都是很爽。

32分钟前
  • ReMinD
  • 还行

看的虽然有中字,但是感觉翻译还是有点蹩脚,高潮部分的古代海战还是值得一看的,标准的融合历史的商业片,朴海日的李舜臣忍而不发,不怒自威,鹤翼阵、龟船加入战局的片段也富于历史想象,完成度很高。壬辰战争虽然三国记载稍有不同,但绝对是当时改变东亚秩序的大事,适合历史爱好者

37分钟前
  • shadowzen
  • 力荐

6.7/10 虽然制作精良的海战场面, 令这部商业作品拥有了一些可观之处。 但本片的诸多失误, 让这场海战成为一把解放叙事枷锁的钥匙, 而非推动作品登上更高一层台阶的助推剂。 漫长的堆积过程中, 演员蹩脚的发音, 角色单薄的形象, 情节空洞的内核...诸多失误让这一过程沦为了诸多参战人员登台亮相的秀场, 丝毫未有战争时期一触即发的紧张感和精彩的头脑风暴。 更为可惜之处, 在于如此漫长的堆积, 只换来一场双线叙事下不够精彩的海战。 对主人公的神化以及大量特写, 更令这场制作精良的海战, 观赏性未达应有的水准。 作为影史票房冠军作品的制作人, 竟犯下因人物和故事实存而忽略剧本完成度的失误, 难以置信。

38分钟前
  • Seok97
  • 还行

朝鲜永远都是日本想要挑战中国的跳板,可惜过去没有成功未来也必不可能成功!韩国人的大国梦都在电影里了…

43分钟前
  • TheK_
  • 较差

李舜臣的存在感甚至不如那个变节的倭寇,场面活也挺一般

44分钟前
  • 荒林
  • 还行

抗倭神剧

47分钟前
  • 梦里何曾花落
  • 推荐

不带点儿国恨家仇是没法get这部电影。。。反正我是没觉得这兵法有多厉害。大场面战争片中国拍的多了,这部还不如很多中国电影。。。

48分钟前
  • 雷克雅未克
  • 还行

最后的海战画面确实精彩。特效不错。紧张气氛也是营造得非常不错。

49分钟前
  • 李湘
  • 还行

看个乐子

50分钟前
  • 告别悲伤
  • 还行

令人鸡血沸腾的《梁鸣海战》的前传《闲山:龙的出现》,在演技音乐摄影氛围道具特效等等(不差钱)加持下的爆款主旋律(伪历史/票房爆款)大片的正确(傲娇)打开方式。在李·人气·孔明·纳尔逊·帅·蛋定·全罗道左水使·舜臣的鹤翼阵瞬移T阵头的终极奥秘 +“新·哈尔滨张谦蛋”统领下的龟甲船plus版自带万岁冲锋、排队枪毙、威风八面连续激发秘奥义的联合暴击之下,阵斩欲率领安宅船+铁甲船舰队入侵大明朝北直隶天津、熬过了“大阪夏之阵”之后活到了宽永年间的“贱岳七本枪”之一的胁坂安治(这厮活了73岁)。黑田官兵卫、加藤嘉明、九鬼嘉隆、藤堂高虎组团打酱油。海战桥段还是拍得不错的。

53分钟前
  • 夏季的天空
  • 还行

和露梁海战比你就可以看出这一部全方位的捉襟见肘,但是由于露梁海战的设定把一些人气成了美羊羊,所以闲山居然比露梁分高

54分钟前
  • FWSWU-LLDAF
  • 还行